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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 저자명 : 2012-05-29 14:53:59
발행연도 : 2011 통권 :
한국민주당의 정치이념 연구: 기원과 전개, 변용과정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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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이 연구는 일제시기 이래 형성된 동아일보 계열의 정치이념과 해방 후에 창당된 한국민주당의 정치이념을 보수주의 정치이념이라는 틀 속에서 연속적으로 검토하고자 한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연구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시기 동안 김성수, 송진우, 장덕수 등은 앞선 세대의 계몽주의적 개화문명론의 연장선에서 민족독립의 방향을 인식하고, 이에 기반하여 적극적인 투쟁보다는 점진적으로 실력을 배양하기 위한 문화지향적인 실천을 전개하였다. 또한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국가관을 보다 명확히 확립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자유민주주의는 한말의 서구로부터 수용된 자유민권 의식에서 싹트기 시작했지만, 그것의 발양은 전근대적인 전제군주제나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주의 도전에 대항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또한 이들이 지향한 이념은 사유재산제를 근간으로 하여 개인의 의식발전, 자유경쟁 등을 통해 한국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들이 유지․보존하고자 한 것은 도덕, 권위, 사유재산제, 제한된 자유 등 제 가치를 포함하는 기존의 사회체제 및 질서였다. 그래서 이들은 혁명을 반대하지만, 기존 사회체제와 질서의 유지를 위해 점진적 개혁을 수용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정치이념을 한국 보수주의의 기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정치이념은 해방 후 자유민주주의와 수정자본주의를 주창한 한민당의 정치이념으로 연속되었다.

둘째, 한민당의 창당은 한국정치사에서 보수주의와 급진주의 정치이념의 대결을 본격적으로 여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후 정치에서 전개된 보수주의는 민족주의와 반공주의 성격이 보다 강화되어 나타났다. 조선총독부 행정권 이양 요청에 대한 송진우와 여운형의 대응은 1919년 3.1운동의 민족정신을 계승하여 출범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한국역사에서의 ‘정통성 있는 국가’로 승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깊게 연관되어 있었으며, 동시에 해방직후 격돌하는 이념의 정치대결을 함축하고 있었다. 송진우, 장덕수 등의 우파는

민족주의 이념에 기반하여 임정의 정통성을 수용하고자 하였으나, 여운형, 박헌영 등의 좌파는 급진주의 이념에 따라 노농계급 등의 정치세력을 규합하여 국가정통성을 새롭게 세우고자 하였다.

한민당 창당의 직접적인 동기는 미군사령부의 진주와 좌파세력의 조직결성에 대한 대응 때문이었다. 해방직후 얼마 동안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결집하고자 했던 우파 민족주의 세력은 좌파의 조선인민공화국 선포에 대응하여, 이를 견제하는 연합정당인 한민당을 창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들의 정치이념은 기존의 민족주의에서 급격히 반공=민족주의로 전환하게 되었다.

셋째, 한민당의 주요 강령과 정책에서의 정치이념은 반공의 정치질서에 기반한 ‘보수화’된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에 의한 경제 관리를 수용한 ‘진보화’된 자본주의가 수렴한 이념이었다. 예컨대 한민당은 국가에 의한 “중공업주의의 경제정책 수립”과 “중요 산업의 국영 또는 통제관리”를 정책으로 선언하였다. 즉,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중요 산업을 관리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인식하였다. 또한 한민당은 토지정책과 관련해서는 자경자농의 원칙하에 경작농민에게 유상 분배하여 토지를 소유하도록 하였다.

요컨대, 자유민주주의의 구현이 한민당의 과제였던 만큼 경제정책도 기회균등이 보장되는 자유경쟁 체제를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민당은 국가의 경제 관리를 통해 시장의 불가피한 혼란으로부터 민생과 건전한 자본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넷째, 한민당은 해방 후 실제 정치 및 정책 대안에서 개방성과 포용성 있는 보수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우파 내의 강경 민족주의자들과 대결하였다. 이승만과 김구 등의 임정 인사들이 각각 환국함에 따라 한민당은 이들 세력에 대한 방침을 결정해야 했다. 한민당은 임시정부의 김구가 아닌 이승만을 건국 초의 초석을 놓을 수 있는 인물로 인식하고, 그를 지지하였다. 당시 이승만은 여러 지도자와 정당간의 분쟁을 해소시키고 통일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었다. 한편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과로 채택된 신탁통치안에 대해 한민당과 임정은 동일하게 반탁 노선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임정 세력이 미군정으로부터 정권을 인수하고자 하는 등의 비타협적 강경 반탁노선을 취하자 한민당은 온건 현실주의 노선으로 전환하였다. 한민당은 반탁이슈를 통해 질서를 파괴하고, 미군정을 접수하는 방식이 아닌, 반탁의사를 합법적이고

제한된 방식으로 전개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한민당의 온건 현실주의와 임정 세력의 강경 민족주의는 미소공동위원회 참여문제에서도 갈등하였으며, 이러한 갈등은 한민당의 핵심 리더였던 송진우와 장덕수의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송진우의 피살은 보수주의 우파 내의 강경 민족주의와 온건 현실주의 대결의 극한점을 보여주었으며, 장덕수 사건은 임정 세력과 한민당 간의 경직된 보수주의의 결정적인 폐해를 드러낸 것이었다.

다섯째, 단정과 남북협상의 정치는 우파 민족주의 세력 간의 정치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대결을 보여주었다. 미소공위가 결렬된 후, 한민당과 이승만 등의 정치현실주의자들은 “가능한 지역에서의 총선거를 통한 정부수립”을 주장하였으나, 김구와 김규식 등은 “외국군의 동시 철수와 남북협상 후에 선거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남북협상파가 구상한 통일수립 방안은 ‘전조선 정치회의의 대표’, ‘임시정부의 대표’, 그리고 ‘입법기관의 대표’를 선출하는 등의 세 번에 걸친 선거가 요구되는 방안이었다. 이는 당시 상황에서 이상적인 구상은 될 수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단선․단정지지파는 당시의 정세가 이러한 방식의 정부수립이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며, 더욱이 좌익세력과의 공조와 연합은 실질적인 공산화로 귀결될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여섯째, 해방 3년의 정치 및 정치이념은 통일정부 구성을 위한 작은 가능성을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확장하는 데 실패했다. 해방 3년의 정치와 관련하여 한민당은 당시 국내외 정세로 인해 공산화가 필연적이었으므로 남한단독수립이 불가피했고, 그것이 최선의 길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한민당의 입장은 김구의 남북협상 추구에 대한 절대적 부정으로 연결된다. 한민당은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가 결과적으로 남북분단을 촉진하는 정치적 실책으로 귀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의 단일독립국가 수립은 분할점령으로 인해, 그리고 미소 두 강대국의 포기할 수 없는 이해관계로 인해 처음부터 대단히 작은 가능성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가능성을 확대시킬 수 있는 단서는 어떤 의미에서 신탁통치안이 최선이었다. 1945년-1946년 선택의 가능성이 열려있었던 시기에 한국의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 이 점을 이해하고, 해방을 전후한 좌우의 급격한 대결을 완충시킬 시간적 유예기로 신탁통치를 이해했더라면, 상황이 훨씬 유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파들은 민족주의적 대의에, 공산주의자들은 사회경제적 대의에 의탁하여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대립적인 정치지형을 고착시킴으로써, 신탁통치안이 지닌 가능성을 경시했다. 1947년 하반기에 반탁이냐 미소공위협조냐 최종선택의 기로에 직면해서 비록 한민당은 입장을 선회하여 미소공위에 협력하고자 하였지만, 그 시점은 너무 늦었다. 결국 이 기회가 사라지자, 한국의 독립은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전 상태로 돌아가 결국 새로운 국제협약, 즉 유엔의 권고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을 초래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 보수주의는 식민지 시기에는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해방 후에는 미소 양국이라는 외부적 환경 하에서 생존했다. 이점이 서구 보수주의와 가장 상이한 차이일 것이다. 해방을 전후하여 크게 변동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다양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안들이 등장하였다. 해방 3년 동안, 한민당과 임정 세력이 중심이 된 한국의 우파 세력은 포용성 있고 개방적인 정치이념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민족주의와 반공주의를 고집함으로써 경직된 특성을 띠었다. 오늘날 한국 보수주의는 경쟁 세력과의 공조와 타협을 통하여 자기개혁을 지속하는 보수주의로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보수주의는 보수와 개혁 양자를 상호보완하면서 발전적이고 균형 있는 보수주의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첨부1
한국민주당의 정치이념 연구(강정인).pdf(1.3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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